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퀸투스 세르토리우스 (문단 편집) === [[세르토리우스 전쟁]] === 메텔루스 피우스가 세르토리우스의 효과적인 게릴라 전술에 고전하면서 전쟁이 장기화되자, 집정관 레피두스와 에트루리아의 반란을 진압한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가 휘하 군단을 이끌고 메텔루스 피우스와 합류했다. 폼페이우스는 적의 본거지로 진격하기 위해 연안 도로를 개척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3만의 보병과 1천의 기병을 지휘한 폼페이우스는 라우론에서 세르토리우스의 공격을 받고 1만의 병력을 잃는 등 메텔루스 피우스와 마찬가지로 세르토리우스에게 패전한다. 기원전 75년, 세르토리우스는 수크로에서 다시 폼페이우스와 맞붙었다. 이 때 폼페이우스의 부하들은 다른 곳에서 세르토리우스의 부하들과 싸우고 있는 메텔루스 피우스가 합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진언했지만 폼페이우스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전투를 감행했다. 세르토리우스는 이 전투에서 적의 한쪽 측면을 돌파하고 폼페이우스가 도주하게 만들었지만, 그 사이에 자신이 이끄는 군대의 또다른 측면이 폼페이우스의 부관인 [[루키우스 아프라니우스]]에게 격파되는 바람에 철수한다. 그 후 메텔루스 피우스가 세르토리우스의 부하인 루키우스 히르툴레이우스를 격파하고 폼페이우스와 합류하자, 세르토리우스는 사군툼 근방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으나 히르툴레이우스가 전사하는 등 전세가 불리하자 퇴각했다. 이 패배로 히스파니아에서 그의 영향력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기원전 74년, 폼페이우스와 메텔루스는 압도적인 군세를 활용해 세르토리우스를 압박했다. 세르토리우스는 게릴라 전법을 활용해 몇번의 소규모 승리를 거뒀지만 전세를 역전시키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